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울 요제프 괴벨스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[[윈스턴 처칠]]이 미국 방문 연설에서 사용해 유명해진 '''[[철의 장막]]'''이라는 단어를 창조해 써먹은 시초가 바로 괴벨스라고 한다. * [[윈스턴 처칠]]이 군 부대를 시찰하면서 [[톰슨 기관단총]]을 직접 시연해 보는 사진을 이용해서 "저런 '''갱단 두목''' 같은 [[전쟁광]]이 여러분을 죽음으로 내몰려고 합니다. 처칠을 쫓아내고 우리 [[제3제국]]과 사이좋게 지내지 않겠습니까!"라는 선전 문구를 영국에 뿌렸는데, 정작 영국 사람들에게 대혹평만 받았다. 결국, 이 건은 괴벨스의 선전 · 선동에서 몇 안 되는 실패로 끝맺었다. 오히려 영국 사람들의 "역시 우리 총리님 화끈하시네!"와 같은 반응으로 전의만 왕성하게 만들었다고. 그런데 이 선전은 오히려 "괴벨스가 영국을 자만하고 방심하게 만들어서 국가 방어에 집중하지 못 하도록 몰아간 [[언플]]이었다."는 평도 있는데,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비열하긴 하지만 영국의 애국심을 역이용해 허를 찌르려 한 작전인 셈이다. 덧붙여 처칠 본인도 저 사진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. 특히 처칠은 "손에 술이나 총을 든 모습을 찍히지 않도록 주의하게나. 난 술은 피했는데 그 몹쓸 사진, 손에 기관단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 때문에 여태까지 곤욕을 치르고 있지. 다른 것도 있지만 그 사진이 나한테 입힌 손해가 커."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. 영국 내 처칠의 다른 정적들도 문제의 사진을 이용해서 괴벨스가 했던 것과 비슷한 정치적 공격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. * [[알베르트 슈페어]]는 히틀러의 연설이 위압감으로 사람들을 흡입시킨 것과는 다르게 괴벨스는 온화한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. 괴벨스의 연설 스타일이 과격한 언어를 사용한 것임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 * 알베르트 슈페어는 괴벨스와 친했으며 괴벨스의 아내 마그다와도 친했다고 한다. * 그는 어릴 적부터 [[소아마비]]를 앓아서 양쪽 발 길이가 달라 보조구를 착용했는데, 이 때문에 [[연합국]]에선 "거짓말쟁이는 발을 끌면서 온다."는 말로 괴벨스를 조롱했다고 한다.[*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악마는 한 쪽 다리가 인간의 다리와 발이 아닌 염소의 다리와 발굽으로 되어 있어 절뚝거리며 걷는다고 믿었다.] * 독일이 [[제2차 세계 대전]]에서 패한 후 그의 시골 별장은 [[소련]]군 공군 사령관인 알렉산드르 골로바노프 중장 ^^(1904년 ~ 1975년)^^이 통째로 뜯어가서 러시아로 가져가서 자기 집으로 삼았다. * [[대한민국]]에서도 [[지식채널e]]에서 괴벨스의 생을 다룬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다.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-cyJWsXxyao|#]] * '''[[TV]]와 [[라디오]]를 정치 선전에 활용한 선구자'''이며 '''[[정치]]쇼의 원조''', '''공약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선거 전략의 선구자'''이다. 또한 [[시장]] 같은 장소에서 '''후보자가 유권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선전하는 행위의 창시자'''이다. 그 덕분에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세계 최초로 정기적으로 TV 방송을 보낸 국가가 되었다. * 현재 뉴스 프로그램에서 이용되고 있는 [[시간 보도 방송|"뚜... 뚜... 뚜.... 삐이~" 소리]]를 낸 뒤 본격적으로 방송이 나가는 방식은 괴벨스가 [[땡전뉴스|사람들을 방송에 집중하게 만들어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해]] 개발한 방식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그 이전부터 시간 보도 방송은 괴벨스 이전부터 도입된 시스템이다. 다만 '''[[라디오]]를 비롯한 미디어 매체를 통해 선진적인 선전 기법을 도입한 것은 괴벨스의 작품'''이 맞다. * [[스탈린그라드 전투]]가 끝난 직후 1943년 2월 18일 [[베를린]] 스포츠 궁전(Berlin Sportpalast)에서 독일과 소련을 상대로 [[총력전]]을 하자는 연설이 유명하다. [[http://serviceapi.nmv.naver.com/flash/convertIframeTag.nhn?vid=C5AE4D9BD8F4F16EF0183F92C1B20F2CCBFD&outKey=V126b6767013f6849044f9c201b6901c89de54efa8961c37cd56c9c201b6901c89de5&width=720&height=438|#]],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-Ew8rVQyND8|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요약분석]] * [[역덕후]]들 사이에서는 "만약 괴벨스가 자살하지 않고 체포되어 [[전범재판]]에 회부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?"라는 가정이 나름대로 흥한 떡밥이기도하다. 특유의 말빨로 연합국 검사 측을 압도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....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그의 입지가 일개 관료가 아닌 나치 최고위층인지라 강렬한 인상은 남길수는 있어도 극형을 피하긴 불가능했을 것이다. 괴벨스 본인은 아니지만 괴링이 실제로 재판에서 괴벨스 못지 않게 자기 변호를 잘 했으나, 죄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[[사형]] 판결을 받았다. 아무리 잘한다 한들 '''"[[나치]]하면 전부 갈아마시겠다."'''고 날뛰던 [[소련]]의 분노 앞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 했을 것이다. * 괴벨스가 한 말이 아님에도 괴소문에 의해 괴벨스가 한 말처럼 알려져버린 문장이 무려 [[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]] 9월 모의평가 [[사회문화]] 문제로 등장했는데, 얼마나 한국에 괴벨스의 가짜 어록이 퍼져있는지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. [[파일:attachment/파울 요제프 괴벨스/test1.png|width=400]][br]그 해 EBS 수능완성 연계 지문이기도 했다.[br][[파일:attachment/파울 요제프 괴벨스/test2.png|width=400]] * [[장 르누아르]]의 반전(反戰) 영화《[[위대한 환상]]》을 매우 싫어했다. 이 영화는 개봉 당시 [[베니스 영화제]]에서 수상했는데, 이때 괴벨스가 봤는지 '''영화판 [[공공의 적]] 제 1위(Cinematic Public Enemy No. 1)'''라고 대놓고 발언했다. 그리고 [[비시 프랑스|나치 치하 프랑스]]에서는 당연히 금지되었고 연합군 공습 도중 필름 현상소에 보관되어 있던 네거티브 프린트가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[[뮌헨]]에 있는 제3제국 영화자료실에 보관되어 있었다.[* 프랑크 헨젤이라는 사람이 옮겨놓았다는 설이 유력하다.] 다만 상영용 프린트는 어떻게 찾았는지 전후 다시 상영되기 시작했다. 네거티브 프린트는 소련에 갔다가 1960년 프랑스로 다시 돌아왔으나, 전달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던지 [[툴루즈]] [[시네마테크]] 창고에 잠들어 아무도 찾지 못했다. 그러다가 1990년대 초반 다시 발굴되었으며 '''상태가 매우 좋았다'''고 한다. 현재 상영되고 있는 위대한 환상 복원판은 이 네거티브 필름을 기초로 한다. 이 위대한 환상이 르누아르 커리어에서 손 꼽히는 걸작이기도 해서 이 일화는 영화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건으로 꼽힌다.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La_Grande_Illusion|출처]] * [[유대인]] 출신의 [[사진가]] 알프레드 에이젠슈타트(Alfed Eisenstaedt)[*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상징하는 [[https://en.m.wikipedia.org/wiki/V-J_Day_in_Times_Square|V-J Day in Times Square]]를 찍은 사진사다.]가 찍은 사진이 유명하다. 단, 이것이 에이젠슈타트가 유대인인지를 알기 전과 후의 사진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. [[https://m.fmkorea.com/5975542038|출처]] * 라디오 방송용으로 써먹기 위해서 [[성우]]를 한 명 고용했는데, 그가 '''[[한스 프리체]]'''이다. 한스 프리체는 괴벨스와 목소리가 똑같았고 그 때문에 괴벨스에게 발탁되었다. 괴벨스가 연설 대본을 써서 한스 프리체에게 주면 한스 프리체는 이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읽는 역할을 했다. 종전 후 [[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]]에 이미 죽은 괴벨스 대신 한스 프리체가 회부되었으나 '''써 있는 글을 읽었을 뿐인 죄'''로,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회부된 자들로서는 이례적으로 [[훈방]]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